평안히 갔더라 (창세기 26:23-35) - 박정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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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안히 갔더라 (창세기 26:23-35) - 박정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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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안히 갔더라 (창세기 26:23-35)


어제 작은교회를 인터뷰 심방하면서 교회가 세워져 가는 가운데 누군가의 헌신의 피 흘림이 있음을 배웠다. 견딜 수 없는 갈등과 고비의 순간에 하나님의 은혜로 포기하고 싶었던 청소년들이 피 값으로 산 소중한 영혼임을 발견하고 청소년들을 향해 지금까지 섬김으로 달려온 발걸음에 진심으로 박수를 보내드린다.


청소년들을 섬기기에 끊임없이 소비만 있지만, 주님이 피 흘려 사신 영혼임을 기억하며 아낌없는 사랑으로 다가가는 이런 소중한 사역자들에게 라마나욧이 비빌언덕과 플렛폼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주님 이들을 축복하소서. 이처럼 헌신하는 이들을 붙잡아 주소서.


오늘 어떤 말씀으로 인도하실까?

본문에는 100배의 축복을 받은 이삭을 시기하여 떠나라고 하고, 우물을 파면 계속해서 다투며 빼앗는 그랄의 목자들속에서 다툼을 포기하고 밀려난 이삭의 행동이 결국은 그들의 항복을 받아내는 통쾌한 장면으로 결론을 짓는 내용이 나온다.


그랄 목자들이 다툼을 포기하자 하나님께서 우리를 넓게 하셨다고 <르호봇>이란 멋진 믿음의 고백을 한 이삭이 브엘세바로 올라가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예배한 후 아비멜렉과 비골이 올라와 평화조약을 체결하는 장면이 하나의 기막힌 드라마처럼 보인다. 26-29절 ‘아비멜렉이 그 친구 아훗삿과 군대장관 비골과 떠불어 그랄에서부터 이삭에게로 온지라 이삭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를 미워하여 나에게 너희를 떠나게 하였거늘 어찌하여 내게 왔느냐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 우리의 사이 곧 우리와 너 사이에 맹세하여 너와 계약을 맺으리라 말하였노라. 너는 우리를 해하지 말라 이는 우리가 너를 범하지 아니하고 선한 일만 네게 행하여 네가 평안히 가게 하였음이라 이제 너는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니라.’


먼저 인간의 모습을 묵상해 보자. 이삭이 100배의 축복을 누리자 미워하고 시기하여 축복의 자리를 떠나게 했다. 그래서 그곳을 떠나서 우물을 파서 샘 근원을 얻으니 그곳도 빼앗으며 괴롭혔다. 이런 사람들이 어떻게 해도 이삭이 잘되니 이제는 두려워서 와서 <우리를 해하지 말라>고 평화조약을 맺자고 하면서 <선한 일만 했고 평안히 가게 했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니 이삭이 얼마나 속이 뒤틀렸을까?


이것이 죄성을 가진 인간의 얄팍함이다. 자신이 좀 강하면 상대를 짓누르고 자신보다 강해지면 비굴해지는 이런 인간의 얄팍함을 묵상해 본다. 왜 이러고 살까? 자신보다 잘 되면 축복해 주고 세워주면서 함께하고, 자신보다 못하면 나눠주고 섬겨주면 얼마나 행복할까?


왜 이러고 살까? 하나님 없는 인생의 삶을 지배하는 것은 두려움이다. 이들이 와서 이삭에게 말하는 것을 보라. <우리를 해하지 말라.>


100배의 축복을 받은 이삭을 축복하지 못하고 떠나게 한 이유는 두렵기 때문이다. 샘 근원을 얻은 이삭을 놔두지 못하는 것도 두렵기 때문이다. 이들은 소유가 그들의 주인이기에 소유의 크기가 사람을 결정짓기에 이런 두려움에 시달리는 것이다. 있으면 빼앗길까 두렵고, 없으면 죽을까 두려운 평생 두려움의 노예가 되어 살아가는 것이다.


인생의 행복은 소유에 있지 않으며, 인생의 힘은 소유에 있지 않다. 창세기 13장에서 아브라함과 롯의 나누어짐이 소유가 많아서 동거할 수 없었다는 고백이 나오는 것처럼 소유가 주인이 되면 인생은 다툼과 두려움에 빠져 살게 되는 것임을 깊이 묵상한다.


반면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밀려나는 삶에도 다툼을 피하며 내려갈 줄 알고 그 안에서 다툼이 그치는 자리를 <르호봇> 여호와께서 넓게 하셨다고 부르며 하나님을 향해 제단을 쌓고 예배하는 이삭을 묵상해 보자.


말씀을 따라 흉년의 때에 해보지 않은 농사를 통해 100배를 얻고, 그것을 다 빼앗기고 골짜기로 옮겨도 그곳에서 우물을 파면 우물이 나오고 다시 밀려다 우물을 파니 샘 근원이 나오고 아무리 괴롭혀도 더 견고해지는 모습에 결국은 하나님이 함께 계심을 보고 두려움의 대상이 되어 평화조약을 맺자고 와서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이들에게 이삭은 어떻게 하는가?


찾아왔을 때 한마디 한다. <나를 미워하여 떠나게 하더니 왜 왔느냐?>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보았다고, 또 너는 하나님께 복 받은 자라고 우리를 해하지 말라고 하자. 그들이 말이 틀렸음에도 불구하고 따지지 않고 흔쾌히 그들을 받아주고 언약을 맺는다. 30-31절 ‘이삭이 그들을 위하여 잔치를 베풀매 그들이 먹고 마시고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서로 맹세한 후에 이삭이 그들을 보내매 그들이 평안히 갔더라.’


<그들이 평안히 갔더라> 이 부분을 메시지 성경은 <그들은 친구가 되어 헤어졌다.>고 번역하고 있다. 즉 두려워하는 마음이 사라진 것이다. 충분히 그들을 겁줄 수 있지만 이삭은 이들에게 잔치를 베풀고 이들과 형제가 되어주었다는 것이다. 원수를 친구로 삼아준 것이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이 아닌가?


오늘 주님은 무엇을 말씀하시는가?

소유를 주인으로 섬기는 인간의 얄팍함을 기억하며 오늘도 소유가 주인이 아니라 주님이 나의 주인임을 이삭처럼 분명히 신뢰하며 다툼을 피하며 평화를 만드는 자로 오늘을 살아내라고 말씀하신다.


오늘 내 모습도 죄로 타락한 성품이 있기에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해지려는 욕망이 존재한다. 그러나 소유가 아니라 주님이 나의 주인임을 인정하고 강한 자를 존중하며, 약한 자를 소중하게 여기는 삶을 살아가는 하루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이삭처럼 하나님이 함께 계심이 분명히 보여지는 삶으로 오늘이란 삶이 되기를 주님은 말씀하신다. 그래서 나를 만나는 사람들이 평안히 가게 되는 그런 복된 날이 되기를 기도한다.


그러나 인간이란 존재가 밀려나는 삶,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말하는 사람에게 이삭처럼 행동하는 일이 쉽지 않다. 여호와께서 넓혀주셨다는 르호봇의 믿음과 주님이 주인임을 아는 예배의 자리가 분명할 때 이런 당당함과 멋진 예수의 향기를 나타낼 수 있음을 본다. 주님, 이 하루 내 힘이 아니라 주님이 넓혀주심을 믿고 주님이 주인이심을 예배로 드러내며 이삭과 같은 넉넉한 삶으로 하나님의 영광이 되게 하소서. 오늘 나를 만나는 사람들이 평안히 가게 하소서.

    

<라마나욧선교회 새로운 도약을 위한 중보기도 요청>

1. 비빌언덕과 플렛폼으로 쓰여질 30억 씨앗자금을 허락하소서.

2. 이곳에서 진짜 목사들이 세워져 다음세대를 일으키게 하소서.

3. 다음세대 교육 대안을 준비할 사람과 재정과 길을 열어주소서.

4. 땡스기브가 견고하게 세워져 주님의 뜻을 이루게 하소서.



글, 박정제 목사

라마나욧선교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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